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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itics of Desire7 : People Who Pretend to Fix Problems by Abolishing the Institution Itself
Fixing a problem is not the same as abolishing the institution
forfreedom02.medium.com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 제도를 없애는 것은 다르다
문제가 생기면 고쳐야 한다.
이건 너무 당연한 상식이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따져 보고, 왜 그런 일이 반복되는지 분석하고, 다시는 같은 폐단이 생기지 않도록 제도를 손보는 것. 정상적인 국가라면 원래 그렇게 움직여야 한다.
그런데 요즘 정치는 점점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문제가 발생한 제도 자체를 없애버리려 한다.
겉으로는 과감한 개혁처럼 보인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그것은 개혁이라기보다 회피에 가깝다. 더 정확히 말하면, 자신들에게 불편한 견제 장치를 치워버리고 싶은 권력의 욕망에 가깝다.
국가 제도는 기분대로 만들고 없애는 장치가 아니다
하나의 국가 제도는 우연히 만들어지지 않는다.
특히 형사사법 제도처럼 국민의 자유와 재산, 국가의 형벌권, 수사와 재판, 권한과 책임이 얽혀 있는 구조는 더욱 그렇다. 검찰청 역시 단순히 어떤 정파가 마음에 들어서 만든 조직이 아니다.
그 제도 하나가 만들어질 때는 오랜 시간 동안 수많은 고민이 들어간다.
권한은 어떻게 나눌지, 누가 누구를 견제할지, 국민의 권리는 어떻게 보호할지, 행정은 어떻게 안정적으로 돌아가게 할지 모두 고려된다.
즉 검찰이든 다른 국가기관이든, 누군가의 기분에 따라 붙였다 떼는 정치적 장식물이 아니라 국가 기능의 한 축으로 설계된 제도라는 뜻이다.
그래서 일부 문제가 있다고 해서 곧바로 “없애자”로 가는 것은 위험하다.
제도는 완벽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하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폐지의 이유가 아니라 개선의 이유가 되어야 한다
물론 검찰에 문제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권한 남용 논란도 있었고, 정치적 편향 시비도 끊이지 않았다. 선택적 수사라는 비판도 받아 왔다. 이런 문제는 당연히 고쳐야 한다.
하지만 바로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생긴다.
검찰에 문제가 있다고 해서, 그 결론이 곧바로 검찰청 자체를 없애는 것이어야 하는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제도의 병폐는 폐지의 이유가 아니라, 개선의 이유가 되어야 한다.
진짜 개혁이라면 큰 틀은 남겨 두고 그 안의 잘못을 도려내야 한다.
수사권 남용이 문제라면 수사 절차를 더 엄격히 통제하면 된다.
기소 재량이 과도하다면 외부 감시와 책임 구조를 강화하면 된다.
정치적 중립성이 흔들린다면 인사 구조와 견제 장치를 손보면 된다.
이렇게 해야 국가의 기능은 살리고, 그 기능이 오작동하는 부분만 정교하게 고칠 수 있다.
왜 사람들은 자꾸 제도 전체를 없애려 하는가
그런데 지금 벌어지는 논의는 종종 그 반대로 간다.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하기보다, 문제를 드러내는 제도 자체를 무너뜨리려 한다.
그 이유는 의외로 단순하다. 제도를 고치는 것은 어렵고, 없애자는 말은 쉽기 때문이다.
“없애자”는 말은 선명하다.
듣기에도 강하다.
정치적으로도 박수를 받기 쉽다.
반면 제도를 보완하는 작업은 느리고 복잡하다.
법을 고쳐야 하고, 절차를 정비해야 하고, 통제 장치를 설계해야 하고, 부작용까지 검토해야 한다.
즉 개혁은 어렵고, 해체는 쉽다.
그래서 무책임한 정치는 언제나 개혁보다 해체를 먼저 말한다.
검찰청 폐지 논의가 보여주는 것
검찰청 폐지 논의는 제도의 병폐를 고치는 대신 제도 자체를 무너뜨리려는 잘못된 접근이 어떻게 포장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겉으로는 “개혁”을 말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국가의 수사 기능과 기소 기능을 어떻게 나누고, 누가 어떤 권한을 가지며, 그 권한을 누가 통제할 것인지에 대한 훨씬 더 복잡한 문제가 따라붙는다.
즉 검찰청을 없앤다고 해서 문제가 저절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권한은 다른 기관으로 옮겨 가고, 새로운 혼선과 공백이 생길 수 있다.
여기서 우리가 봐야 할 것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다.
정말 제도를 더 낫게 만들려는 것인지, 아니면 특정 권력에게 불편한 장치를 제거하려는 것인지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
행정은 해체보다 보완을 먼저 생각한다
행정의 관점에서 보면 제도를 없애는 것은 가장 신중해야 할 선택이다.
제도 하나를 없앤다는 것은 단순히 간판 하나를 내리는 일이 아니다.
법률을 다시 고쳐야 하고, 조직을 재편해야 하고, 예산을 조정해야 하고, 인력을 재배치해야 하고, 기존 업무와 기록과 권한도 전부 다시 정리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생기는 공백과 혼선은 결국 국민이 감당하게 된다.
정치인은 “없애겠다”는 말 한마디로 박수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그 뒤에 따라오는 행정적 후폭풍은 말 한마디로 끝나지 않는다.
그래서 책임 있는 국가는 폐지보다 보완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정말 없애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는 경우가 아니라면, 우선은 기능을 살리면서 폐단을 줄이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그것이 행정의 상식이다.
권력은 왜 견제 장치를 싫어하는가
더 본질적인 문제는 따로 있다.
권력은 언제나 자신을 견제하는 장치를 불편해한다.
수사가 불편하고, 감시가 불편하고, 책임 추궁이 불편하다.
그래서 불편한 기관을 향해 “낡았다”, “비효율적이다”, “없애야 한다”는 말을 반복한다.
겉으로는 개혁의 언어를 쓰지만, 실제로는 견제를 제거하고 싶은 욕망이 숨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나는 제도를 없애자는 말을 들을 때마다 먼저 묻고 싶다.
정말 그 제도가 국민에게 불필요해서 없애자는 것인가.
아니면 그 제도가 누군가에게 너무 불편해서 없애고 싶은 것인가.
이 질문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민주주의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권력이 자신의 불편함을 국가 개혁으로 포장하기 시작할 때이기 때문이다.
큰 제도는 수술해야지 절단해서는 안 된다
큰 제도는 원래 불편하다.
권력을 묶고, 절차를 요구하고, 책임을 따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주주의와 법치는 바로 그 불편함 위에 서 있다.
국가가 불편한 견제 장치를 참지 못하고 하나씩 제거하기 시작하면, 남는 것은 효율이 아니라 권력의 편의다.
문제가 있다고 제도를 없애는 정치는 통쾌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나라를 운영하는 방식은 통쾌함이 아니라 정교함이어야 한다.
큰 제도는 수술해야지 절단해서는 안 된다.
도끼는 박수를 받기 쉽지만, 나라를 살리는 것은 언제나 메스다.
진짜 개혁은 없애는 것이 아니라 바로잡는 것이다
정치를 정말 바꾸고 싶다면, 문제를 드러내는 제도를 없앨 것이 아니라 그 제도가 함부로 휘둘리지 못하도록 더 엄격하게 고쳐야 한다.
문제가 있다고 제도를 무너뜨리는 것은 개혁이 아니다.
그건 단지 더 큰 혼란을 부르는 쉬운 선택일 뿐이다.
진짜 개혁은 구조를 살린 채 병폐를 줄이는 데 있다.
큰 틀은 지키고, 잘못된 부분은 정교하게 도려내는 데 있다.
그것이 국가를 운영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그것이 법치의 방식이어야 한다.
그 외의 것은, 결국 욕망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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