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정치

욕망의 정치 여섯번째 : 사라지지 않을 지위재 - 희소성과 소유욕

ForFreedom 2026. 3. 15. 17:37

왜 풍요가 와도 인간의 경쟁은 끝나지 않는가 (영문버전)

인류는 거의 모든 시대마다 하나의 꿈을 반복해 왔다.

기술이 발전하면 언젠가 우리는 일종의 유토피아에 도달할 것이라는 믿음이다.

기계가 우리가 필요로 하는 거의 모든 것을 생산하고, 음식은 풍부해지고, 에너지는 저렴해지고, 정보는 자유롭게 흐르는 사회. 노동은 더 이상 생존을 위한 필수 조건이 아니게 된다.

이러한 세상에서는 갈등이 줄어들 것이라고 우리는 기대한다. 빈곤은 사라지고, 인간은 생존 경쟁에서 해방되어 더 높은 차원의 삶을 추구하게 될 것이라고 상상한다.

이런 낙관적인 전망은 오늘날에도 다양한 형태로 등장한다.

실리콘밸리는 인공지능이 희소성을 제거할 것이라고 말한다. 미래학자들은 “노동 이후의 사회(post-work society)”를 이야기한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자동화가 전 인류에게 보편적인 풍요를 가져올 것이라고 전망한다.

하지만 이 꿈에는 하나의 중요한 결함이 있다.

물질적 희소성이 사라져도 지위의 희소성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는 지위의 희소성이 물질적 희소성보다 훨씬 더 강력하다.

이것이 바로 지위재(positional goods)의 문제다.


모두가 가질 수 없는 재화

경제에서 대부분의 재화는 생산을 늘릴 수 있다.

사회가 더 생산적으로 변하면 사람들은 더 많은 것을 가질 수 있다.

식량 생산이 증가하고, 에너지가 더 저렴해지고, 옷과 생활용품은 훨씬 쉽게 생산된다. 디지털 서비스는 거의 무한히 확장될 수 있다.

이러한 재화들은 본질적으로 경쟁적이지 않다.

누군가 냉장고를 산다고 해서 내 냉장고의 가치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수백만 명이 스마트폰을 사용한다고 해서 내 스마트폰이 쓸모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지위재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

지위재의 가치는 그것 자체에 있지 않다.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서 가치가 생긴다.

지위재는 다른 사람들과 나를 구분해 줄 때 비로소 가치가 생긴다.

예를 들어 이런 것들이다.

명문 대학의 학위
도심을 내려다보는 펜트하우스
강력한 기관의 지도적 위치
한정 생산된 고급 시계
부와 영향력을 상징하는 특정 지역의 거주지

이것들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다.

사회적 신호(signal)다.

그리고 그 신호는 서열(rank)을 나타낸다.

하지만 서열은 모두가 동시에 가질 수 없다.

모든 사람이 가장 명성 높은 시계를 가진다면 그것은 더 이상 명성이 아니다. 모두가 가장 좋은 지역에 산다면 그곳은 더 이상 특별한 지역이 아니다. 모두가 엘리트라면 엘리트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지위재는 기술 발전과 관계없이 본질적으로 희소하다.


탈희소 사회라는 환상

기술 유토피아의 꿈은 대개 희소성이 물질적인 문제라고 가정한다.

기계가 무한히 재화를 생산할 수 있다면 경쟁은 줄어들고, 사람들은 생존 압박 없이 편안한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이 가정은 인간의 동기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다.

인간은 단순히 절대적 풍요를 추구하지 않는다.

인간은 상대적 위치를 추구한다.

심리학과 경제학 연구에서는 흥미로운 현상이 반복적으로 관찰된다.

연봉 8만 달러를 받는 사람이 주변 사람들이 모두 6만 달러를 버는 환경에 있다면 그는 자신을 상당히 부유하다고 느낄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연봉이 12만 달러라도 주변 사람들이 모두 20만 달러를 번다면 상대적으로 뒤처졌다고 느낄 수 있다.

객관적인 숫자는 후자가 더 높다.

하지만 체감되는 만족도는 오히려 낮을 수 있다.

왜 이런 일이 생길까?

인간은 본능적으로 타인과의 비교 속에서 자신을 평가하기 때문이다.

이 성향은 단순한 문화적 현상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인류의 진화 역사에서 집단 내 서열은 생존과 번식 기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높은 지위를 가진 개인은 더 많은 자원과 더 좋은 짝을 얻을 가능성이 높았고, 더 큰 보호를 받을 수 있었다.

현대 사회에서는 이러한 생존 구조가 직접적으로 작동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심리적 장치는 여전히 인간 안에 남아 있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을 비교한다.

그리고 지위재는 그 비교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도구가 된다.


부가 늘어도 만족이 늘지 않는 이유

현대 경제 성장의 역설 중 하나는 부의 증가가 반드시 행복의 증가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많은 선진국들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소득이 크게 증가했다.

하지만 삶의 만족도 조사를 보면 상승 폭은 그만큼 크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이 문제는 오랫동안 경제학자들을 고민하게 만들었다.

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지위 경쟁이다.

사회 전체가 동시에 부유해지면 상대적 서열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보자.

달리기 경주에 참가한 모든 선수에게 갑자기 더 빠른 신발이 주어졌다고 가정해 보자.

모든 선수의 속도는 빨라진다.

하지만 결승선에 도착하는 순서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경제 성장은 생활 수준을 크게 개선할 수 있다.

집은 더 넓어지고, 의료는 좋아지고, 교통은 더 안전해진다.

하지만 지위재의 세계에서는 여전히 같은 규칙이 적용된다.

상위 자리는 소수만 차지할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 많이 일하고 더 많이 소비하지만 여전히 같은 경쟁 속에 있다고 느낄 수 있다.

이 현상은 종종 지위의 러닝머신(status treadmill)이라고 불린다.

아무리 빨리 달려도 경쟁 자체는 끝나지 않는다.


가장 강력한 지위재: 위치

지위재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것 중 하나는 바로 토지와 위치다.

대부분의 재화는 생산을 늘릴 수 있지만, 토지는 다르다.

토지는 생산할 수 없다.

아름다운 해안 전망은 한 장소에만 존재한다. 역사적으로 명성이 쌓인 지역은 복제할 수 없다. 대도시의 중심지는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한정되어 있다.

그래서 같은 도시 안에서도 부동산 가격은 극단적으로 차이가 날 수 있다.

집의 구조는 비슷할 수 있다.

하지만 위치(location)가 그 집을 지위재로 만든다.

많은 사회에서 주택은 단순한 주거 공간을 넘어선다.

그것은 성공과 안정, 그리고 사회적 소속을 나타내는 신호가 된다.

사람들은 단지 편리함 때문에 특정 지역에 살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그 지역이 제공하는

교육 기회
사회적 네트워크
장기적인 명성

때문에 경쟁이 발생한다.

이때 주택 가격은 단순한 건축 비용을 반영하지 않는다.

지위 경쟁의 가격이 된다.

그리고 지위 경쟁에는 자연스러운 상한선이 없다.


교육이라는 지위 토너먼트

교육 역시 지위 경쟁의 중요한 사례다.

이론적으로 교육은 공공재다. 사회 전체의 교육 수준이 높아지면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

그러나 엘리트 교육은 다르게 작동한다.

최상위 대학은 무한히 학생을 늘릴 수 없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그 대학의 명성 자체가 약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명문 대학의 가치는 상당 부분 대부분의 사람들이 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에서 나온다.

그래서 교육 시스템은 종종 지위 토너먼트가 된다.

부모들은 제한된 명문 대학 자리를 확보하기 위해 막대한 시간과 자원을 투자한다.

과외
시험 준비
각종 스펙 활동

이 경쟁의 목표는 단순한 지식 습득이 아니다.

지위 우위다.

수많은 가족들이 소수의 자리를 놓고 경쟁할 때 교육은 학습이 아니라 순위 경쟁으로 변한다.

이 과정에서 학생, 부모, 그리고 사회 전체가 큰 압박을 받게 된다.

그러나 지위 보상이 강력하기 때문에 경쟁은 쉽게 멈추지 않는다.


지위 경쟁의 사회적 비용

개인의 관점에서 지위재를 추구하는 것은 합리적일 수 있다.

높은 지위가 큰 보상을 제공한다면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사회 전체의 관점에서는 다른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

수백만 명의 개인이 동시에 지위 경쟁에 참여하면 결과는 일종의 군비 경쟁처럼 보일 수 있다.

예를 들어 고급 소비를 생각해 보자.

어떤 사람이 성공을 보여주기 위해 비싼 자동차를 산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도 비슷한 차를 사기 시작하면 그 신호는 약해진다.

그러면 더 비싼 차가 등장한다.

이 경쟁은 끝없이 이어질 수 있다.

개인의 선택은 합리적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사회 전체는 단순한 상징 경쟁에 막대한 자원을 쓰게 된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지위 낭비(positional waste)라고 부르기도 한다.

자원은 전체 복지를 높이기 위해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지위를 재분배하기 위해 사용된다.

서열만 바뀔 뿐 모두가 더 행복해지는 것은 아닐 수 있다.


기술은 왜 지위재를 없애지 못하는가

기술 발전은 일반 재화를 훨씬 저렴하게 만드는 데 매우 효과적이다.

컴퓨터
스마트폰
의류
교통

이 모든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접근 가능해졌다.

하지만 기술은 지위재를 쉽게 늘릴 수 없다.

도시의 중심지는 복제할 수 없다. 역사적 명소를 대량 생산할 수 없다. 최고 경영자 자리를 수백만 명이 동시에 차지할 수는 없다.

오히려 기술 발전은 지위 경쟁을 더 강화할 수도 있다.

기본 재화가 풍부해질수록 사람들은 더 희귀한 구별 요소를 찾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새로운 방식으로 자신을 차별화하려 한다.

물질이 풍부해지면 경쟁은

경험
네트워크
문화적 자본
영향력

같은 영역으로 이동할 수 있다.

경쟁의 무대는 바뀌지만 경쟁 자체는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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