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세상

누군가는 나를 극우라고 부른다. 그래도 나는 자유를 포기하지 않는다

ForFreedom 2026. 3. 10. 20:38

요즘 정치적 의견을 말하다 보면 쉽게 듣는 말이 있다.

“극우다.”

자유를 이야기하면 극우,
국가의 질서를 이야기하면 극우,
법치주의를 이야기하면 극우라는 말이 돌아온다.

처음에는 이 단어가 낯설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한 가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정말 내가 극우일까.
아니면 자유라는 가치가 불편해진 시대일까.


자유를 지키겠다는 말이 왜 극단이 되었을까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자유는 가장 기본적인 가치다.

  • 표현의 자유
  • 사상의 자유
  • 경제 활동의 자유
  • 국가로부터의 자유

이 모든 것이 민주주의의 기반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자유를 강조하는 사람들에게
이상한 낙인이 붙기 시작했다.

“극단적이다.”
“위험하다.”
“극우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다.

자유를 지키겠다는 말이 왜 극단이 되는가.

자유는 헌법의 핵심 가치이며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자유는 언제나 편안한 가치가 아니었다

역사를 보면 자유는 언제나 편안한 가치가 아니었다.

자유를 지키려 했던 사람들은 늘 비난을 받았다.

어떤 시대에는
체제를 흔든다는 이유로 공격받았고

어떤 시대에는
너무 강경하다는 이유로 비난받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역사는 늘 같은 결론을 남겼다.

자유를 지키려 했던 사람들은 틀리지 않았다.

자유를 포기한 사회는
결국 권력과 통제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 사회에서 가장 먼저 사라지는 것이
바로 개인의 자유였다.


자유는 때로 강한 의지를 요구한다

자유를 지키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왜냐하면 자유는 언제나
책임과 질서를 함께 요구하기 때문이다.

자유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 법치가 유지되어야 하고
  • 국가의 질서가 존재해야 하며
  • 공동체의 안전이 확보되어야 한다.

이 기반이 무너지면
자유는 곧 혼란으로 바뀐다.

그래서 민주주의 국가들조차
위기의 순간에는 강한 결정을 내리기도 한다.

그것은 자유를 억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유가 사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절윤 정치가 보여주는 보수의 고민

최근 정치권에서는 ‘절윤’이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거리를 두겠다는 정치적 선언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일부 정치인들은 과거의 결정들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내놓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정치는 때때로
원칙보다 분위기에 따라 움직인다.

권력이 강할 때는 침묵하고
권력이 약해지면 비판이 시작된다.

그래서 우리는 정치인의 말보다
그가 어떤 원칙을 지키고 있는지를 봐야 한다.


누군가는 나를 극우라고 부른다

그래서 나는 이제 이렇게 말하려 한다.

누군가는 나를 극우라고 부른다.

하지만 나는 한 가지 질문을 던지고 싶다.

자유를 지키겠다는 의지가 왜 극우인가.

자유를 지키겠다고 말하는 사람을
극단이라고 부르는 사회라면
그 사회는 이미 자유의 기준이 흔들리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누군가가 나를 극우라고 부른다면
나는 굳이 부정하지 않겠다.

자유를 수호하겠다는 의지가 극우라면
나는 그 이름을 피할 생각이 없다.

왜냐하면

자유를 포기하는 것보다
극우라는 비난을 받는 것이 훨씬 가벼운 일이기 때문이다.